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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민주주의 혁명으로 불리는 프랑스 혁명과 미국의 독립 혁명!

배경지식으로 알아야 하는 부분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았다. 이 두가지 중 미국의 독립 혁명에 대해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다. 

 

<American Independence War, The American War of Independence>

 

미국의 독립혁명, 독립 전쟁은 현재 미국 땅에 살고있던 13개의 식민지와 영국사이의 전쟁이다. 

 

우선, 영국과 영국의 이 식민지의 관계부터 이해해야한다. 이들간의 관계는 식민지라고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사이의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영국에서는 가난하거나 죄수들을 상대로 새로운 희망의 땅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모았고, 미국으로 이들을 보냈다. 그들이 미국땅에 정착을 한 것이었다. 인디언들도 이들의 정착을 도왔고, 유럽 각지에서도 가난 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희망을 품고 모여들기도 했다. 이들은 자치의 권리도 누렸다.

 

영국은 프랑스와의 전쟁 후 재정적으로 타격을 입는다. 전쟁에 어마어마한 돈을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식민지에 세금을 높게 책정해서 그 손실을 메우려는 정책을 세운다. 이것은 미국땅에 살고있던 그들의 식민지의 경제에 타격을 주었다. 애초에 식민지 지역으로의 이주를 결심했던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가 큰 사람들이 많았기에 영국의 위와 같은 정책은 사람들을 분노하게하고, 독립을 하고자 하는 불씨를 심어주었다. 그 중 차(tea)에 세금을 메기는 것에 분노해 사람들이 일으킨 것이 보스턴 차 사건이기도 하다. 

Boston tea party

이것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미국 독립 전쟁은 1775년부터 1783년까지 일어났던 전쟁으로 결국 보스턴에서 독립전쟁이 시작하여 1776년 7월 4일에는 독립선언문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미국은 이 날을 독립 기념일으로 삼는다) 미국의 승리로, 1783년 파리조약에서 미국은 독립이 되었음을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전쟁 이후 1787년에는 필라델피아 대표 회의에서 미국의 헌법이 규정되었다. 

 

Declaration of Independence

 

그리고, 영국 국왕을 대체할 통치자가 필요해진 미국은 1789년에 조지 워싱턴을 대통령의 자리에 올렸다. 이로써 조지 워싱턴은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 

 

이 독립 전쟁은 경제적인 이유에 의한 전쟁이었으나, 근대적 공화국을 수립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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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은 미국의 남부의 주들과 북부의 주들이 서로 대치했던, 많은 군인들과 시민들이 죽어난 전쟁이다. 미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한 획이라고 할 수 있는 남북전쟁을 훑고나면 아직도 그들에게 잔재하는 사상들이나 사고방식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땅이 굉장히 크기도 하고, 각각의 주들이 모여서 미국이라는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있는데, 크게 동부, 서부 그리고 남부로 나뉜다고 본다. 동부 서부 남부의 자연환경이나 기후 또한 다르지만, 지역에 따른 성향 또한 많이 다르다. 이 전쟁은 대표적으로 그 성향을 극단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미국 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그 유명한 Civil War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남북전쟁에서의 북부지역은 주로 동부를 의미하는데, 수도가 위치하고있어 많은 것이 집중되어있는 곳이 동부지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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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북부는, 지금도 그렇듯 경제의 성장이 빠르고 산업화가 이루어지며 경제가 발전하고있었다. 반면 남부는 농업과, 많은 가정에서 자급자족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즉, 북부지역은 도시화로 인해 그 당시에 존재하던 노예의 필요성이 점점 줄고 있었으며, 남부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농업으로 먹고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큰 농장에서는 노예를 대거 부리며 1차산업에 종사했고, 한 가정에서도 노예를 소유하고 있으면 부유한 가정으로 여겨졌다. 백인 사회의 중요한 자산 중 하나가 바로 노예였다. 

이러한 지역적 차이는 "노예제도 폐지" 라는 사항에 대해서 극단적으로 다른 반응을 가져왔다. 

북부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나왔는데, 여기에는 두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보고있다. 첫째, 인간의 인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며 노예제도가 비인간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고, 다른 강대국들이 노예제를 폐지하며 미국도 그 흐름에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 인간권리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북부에서 산업화가 진행되며 노동이 많이 필요해지자, 남부에 집중되어 있는 노예들을 해방하여 노동력을 순환시키자는 취지였다고도 한다. 

이러한 북부의 입장에, 노예제에 많이 의지하고 있는 남부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반대했고, 남북이 이 사안에 대립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아슬아슬하게 이를 중재하며 버텼다.

그러다가 대통령 선거에서 노예폐지를 옹호하는 입장의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고, 이에 남부는 질겁하며 링컨이 취임하기도 전에  7개의 주들이 미연방에서 탈퇴를 선언하고 "남부 연합" 을 결성하게된다. 그리고 그들의 대통령으로 제퍼슨 데이비스를 올려놓는다. 미연방정부는 다시 돌아오라고 남부 연합을 위협하고, 그렇게 남과 북이 대치를 하다가 남부에서 먼저 공격을 시작해 남북전쟁이 시작된다. 

 

남부 연합은 "아메리카 연합국" 이라고도 하고 이 후 4개의 주가 더 추가되면서 국기가 이렇게 바뀐다. 이 국기들을 현재 사용하는 것은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암시할 수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조심스러워야 한다. 아무것도 모른채 사용해서 오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자. 

 

이 전쟁의 과정은 다른 전쟁들처럼 많은 과정이 있었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처음에는 남쪽이 우세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북쪽이 승리하게된다. 

결과적으로 북부가 이 내전에서 승리하게 되면서 남부 연맹과 노예제도는 사실상 끝이났다고 할 수 있다. 이 전쟁으로 인해 군인, 민간인 할 것 없이 엄청난 인명 피해가 있었으나, 이후 정부의 재건 노력으로 미국의 연방정부의 힘은 더 강화되었고, 이로 인해 미국이 열강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노예들의 인권 문제는 사실상 여기서 끝이 나지 않지만, 노예제도는 폐지가 되었다. 

 

 

 경제가 중심인 동부는 뉴욕 워싱턴 등을 중심으로 수많은 부자들과 사업가들을 탄생시키고, 남부에서는 아직도 인종차별이 심각하다. 텍사스의 총기사건이 발생한지 한달도 지나지 않았고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백인 우월주의의 20대 청년이었다. 19세기 중반에 일어났던 이 내전은 200년 채 되지않았다. 아직도 지역적 특색으로 인한 사람들의 인식차이는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과 미국인을 이해하는데 남북전쟁에 관한 배경지식은 사상이나 사고방식이 다를 수 있는 그들을 상대하는데 큰 바탕이 되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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